2018년 1월 1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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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박 선생님!! 환자의 뇌파 그래프가 델타파에서 세타파로.."

나른한 삶 가운데에서 나라는 의식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눈도뜰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으며 무엇보다 감각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느꼈던 감정선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두려움에 빠진 느낌이었다.


"좋아! 맥박이 70이면 됐고, 혈액 수치도 이제 정상으로 가고 있고, 으음.. 트랜스 퓨전은 중지해도 되겠어... 수면제와 진통제는 환자의 신경이 정상화 될 때 고통이 생길 수 있으니까. 처방해준 대로 하고,"

"알겠습니다. 교수님."

잿빛사이로 한 조각의 편린처럼 사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운전대 쪽으로 비스듬히 8시방향에서 때리는 엄청난 불빛, 그것은 경험상 십오 톤 이상의 대형 화물차 높이의 하이빔이었다. 어떻게? 대형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갑자기 나타나다니, 순간 어지러움이 생기고 구토하고 싶었지만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깨어나는 건가요?"

"환자분 어머니이신가요? "

"예, 제가 차윤석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아직 환자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위험한 상태는 아니고요. 신경계에 충격으로 안정이 필요합니다."

충돌의 그 직전 차윤석이 운전석에 있는 나를 잡아끌어 내려고 목을 잡는 움직임이 기억이 났다.

`차윤석의 어머니라고? 그럼 차 이사도 살았단 말이구나.`

차는 운전석으로 돌진했으니까.. 내가 살았다면 그도 무사했으리라.... 그러나 수면제 탓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고 나는 이내 깊은 잠이 들었다가 .... 

"윤석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분명히 나를 잡고 흔들며 윤석이라고 부르는 소리였다.

내가 윤석인가? 그럼 나는 어디 있지? 정체성을 잃고 혼돈 속에서 당혹했다. 그때.. 암전이 찾아왔다. 블랙아웃,


"상기야!"

"누구야! 이 목소리는? 차 이사님!"

암전된 가운데 나라는 의식과 차윤석의 소리가 있었다.
"그래, 나야 차이사, 윤석이야. 미안하다. 그동안 좋은 의지가 되어주었는데.."

"무슨 소리여요차 이사님이 내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돈도 그렇게 많이 주고 그랬는데.. 근데 여기가 어디고 어떻게 된 거죠?"

".. 그깟 돈.. 네가 내게 보여준 호의에 비하면 졸렬했어,"

"아냐, 난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이에요?"

"..그래 이 상황을 설명해볼게, 침착하고 잘 들어, 우리 함께 있다가 사고 났어,"

"알아요. 커다란 트럭이었어요."

"맞아, 그런데 그 사고로 난 죽지 않을 만큼만 다쳤고, 대신 너는 죽을 만큼 다치게 된 거야. 그런데 난 너무 죽고 싶었고, 반면 넌 아직 삶에 미련이 남아있었지,.. "

" 그게 무슨 뜻이죠?"

"몰라, 죽어보니 울림의 소리가 있더라고, 그건 아마도 신이겠지?.."

"차 이사님이 죽었다고요?"

"응, 미안해, 내가 죽었어.. 난 정말 살고 싶지 않았었거든, 사고로 죽게 된 네가 영혼과 분리되는 그 순간 너의 몸에 죽음으로 가는 문이 생겼고 내가 그걸 차지 한 거야. 때문에 넌 죽음으로 못 가고 영혼을 잃게 된 내 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겠지..."

"그게 말이 되나? 그럼 나는 누구지? 아니, 내 죽음을 네가 차지했다고?"

"몰랐어, 모든 건 찰나에 일어났고 그것은 신의 영역인데, 미안하다. 상기야. 너의 죽음을 가지게 돼서 염치없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야..이 씨발놈아. 뭘 받아들여? 아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는 화가 나 차 이사에게 반말에 욕까지 하고 있었다.


"너, 원래 긍정적 인간형 아니었냐? 좋게 생각하자. 나도 알고그랬겠냐? "

"차윤석! 씨발,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

".. 어차피 죽고 싶지 않았지만, 죽게 된 건 너였잖아? 그리고 지금 살아있잖아? "

"오..신이시여, 이게 사실입니까? 미치겠네, "

".. 상기야,"

" 내 생각엔 이건 사고가 아니야. 누군가 고의적인 살인 같아."

"..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죽고 싶었겠어? 하지만 이제 그건 살아남은 자의 숙제니까, 알아서 해 네가 복수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난 이제 상관없어.."

"이기적인 놈, 왜 상관없어? 내가 죽었는데, 내가 죽어서 우리 부모가 얼마나 원통하시겠어? 그리고 나 이제 은우랑 잘해보려 했는데.. 씨발 망했어."

"아.. 그렇구나. 미안하다. 하지만 내 몸으로 살면서 너 좋아하는 돈, 맘껏 쓰고 연애질하고 폼나게 살도록 해 그게 내 미안한 댓가의 전부야. 대신 우리 엄마한테만 내가 못다 한 효도 조금신경 써주고 네 부모님도 챙겨 드리고, 너 그런 거 부러워했었잖아? 한번 그렇게 살아봐."

"아.. 이해가 안 되네, 너 왜 죽고 싶었냐? 무려 재벌 삼세잖아? 게다가 인성도 좋고, 스팩도 좋고 도대체 왜 죽고 싶었다는 거야?"

"... 네가 보기에는 그런 그렇게 보였겠지만, 그런 곳이 사실은 너의 그 작은 친절에도 감격하고, 베프 의지하고 싶을 만큼 나의 실제는 그런 삭막하고 냉혹한 환경이었다고 말하면 이해하겠어? 물론 유학 중일 때 나도 우리 그룹 최고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은 적도 있었지, "

".. 참고 그렇게 해보시지. 왜 죽고 싶었냐고!"

"하.. 하지만 말이야. 내가 어릴 때부터 겪어도 폭력은 결코 면역되지 않고 점점 나의 정신을 피폐 시키더라고, 막상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형제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 넌 모를 거야. 도둑놈으로 취급하더라고, 아버지의 유산을 축낼 그런 저열한 놈이 되고 말았다고.."

그의 참담함이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불쌍한 차이사.. 이전에 내가 갖고 있던 긍정의 힘은 근거가 사라졌다. 차윤석의 중추신경계 소마(soma)와 나의 정보가 어떤 동기화를 하는 과정에 있었다. 한마디로 나라는 실체는 공허하게도 전기적 신호뿐이었다.

"난 매일같이 그들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해도 이상할 거 하나 없을 것 같은 그런 공포의 악몽 속에 시달리면서 결국 체념, 그리고 굴욕감 그런 나 자신의 무력해진 비겁에 대한 분노, 때론 그마저 뛰어넘을 공황 속에서 좀비처럼 살아가다가... 유일하게도 안전하다고 믿었던 때가 너와 떠들던 시간이었어, 다시 또 너를 만났을 땐 눈물이 다 나더라? "

"아이고.. 젠장, "

아쉬운 게 있다면 죽기 전에 네가 피우던 그 말보로 담배 한 대 나도 한대 빨아봤으면...했는데..."

윤석의 기억이 처절하게 변명했지만 나는 어쩐지 공허하고 억울했다.

"지랄.. 그런데 왜 나를 살리려고 잡아당겼어?"

"그건.. 트럭이 달려들 때, 그 찰나에 혼자 살아날까 두려웠던 거야.. 너를 살리려기 보단 같이 죽으려 한 거지, 미안하다 상기야."


**

당분간 엄마 집에 와있기로 했다.

물론 차윤석의 엄마였다. 송연자, 예명 손은지로 알려진 탤런트출신으로 은퇴 후 분당에 지하 삼 층 지상 십 층 연면적 오천 평의 빌딩 주인으로 조용히 묻혀 살다가 이번 아들의 요양을 핑계로 나를 자신의 집을 데려간 것이다.

그녀는 이제 마흔여섯, 이미숙 차화연 원미경 같은 연예인과 동갑이었다.

물론 미모도 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그녀는 차윤석을 스물에 낳은 셈이었다.
열아홉 고등학생 때 미스 충북 진으로 본선에 올랐지만, 그때 바로 그 선발대회를 스펀했던 동우그룹 부회장으로 있던 아버지 차도균에 의해 거의 납치하기 되다시피 끌려가 곧장 동거에 들어가면서 대가로 광고 모델과 탤런트로 반짝 뜨는 듯 했지만, 곧 이은 임신과 출산 전 후 할 수 없이 윤석에 대한 미래 보장을 전제로 연예계에서 은퇴했고, 이곳 용인에 내려와 살다가 차회장이 준 재산을 종잣돈으로 부동산투기에 뛰어들어 수백억 재산을 일군 이재에 밝은 여자사업가이기도 했다. 

"너 의사가 운동 좀 시키라더라. 근육량이 너무 적데, 물리치료 겸 우리 건물에 있는 헬스에 나갈래?"

너무는 그저 엄마로서 감정이 실린 수사였다. 하지만 확실히 차윤석의 몸에 근육이 부족했다.

석달만에 병원문을 걸어 나왔을 때 이런 허약한 신체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남들의 시선마저 불편했다. 하지만 머리에 든 지성은 윤석에게 큰 차이로 저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척추골절과 이 때문에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누워있었지만 사실 그 절반의 시간은 차윤석의 기억을 작동시킬 나의 영혼이라 불리는 전기적 신호가 두 인격을 교묘하게 컨버젼 되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알았어요."

"정말?"

송연자는 퇴원한 아들 윤석의 살가운 대응에 살맛이 났다.

사고 전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엄마라고도 잘 부르지도 않고 차갑게 대하던 녀석이 병원에서 자신의 정성을 인정했는지 아니면 차씨집안의 살벌함을 실감했는지 이제 자신에게 의지해오는 모습에 감동을 살짝 받았던 것이다.

"엄마, 그런데 상기네 집에 보상은 했어요?"

"상기? 아! 류 비서, 당연하지, 은인인데 회사에서도 조의금에다 네 아버지와 네 큰형도 류 비서가 너를 살렸다는 소리를 듣고 개인적으로 더해서 오억 원의 위로금을 마련해 전달했단다.나 역시 너와 그렇게 친했다는 말에 고마워서라도 일억 원짜리cd를 만들어 상기 어머니에게 전 해드렸다. "

엄마가 문득 보고 싶었다.

그래 아들이 죽었는데 오륙 억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아버지의 장사도 어려울 때 동생까지 생각하면 어느 정도 위안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조금은 편해졌다.

더구나 내가 비록 차윤석의 몸이지만 어쨌든 살아있으니 우리 집이 어려울 때 슬쩍 도울 수도 있고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정리하기로 맘먹었다.

나 류상기의 흔적은 그렇게 직장 상사를 구하려다 산화한 직원이 되어 세상에서 말소되었다. 은우도 내가 죽은 걸 알까? 


윤석이 대학교 때도 조용히 지내다 유학을 떠났던 탓에 문성진같은 업퍼 클래스에서 알고 지내던 비슷한 또래 몇몇이 안부를 전해왔지만 직접 찾아준 이는 문성진이 유일했다.

"다행이야. 제법 큰 사고였는데비서였냐? 의리있는 친구네, 너를 살리려고 핸들을 자기 쪽으로 틀었다더라,"

씨발, 슬펐다. 내가 핸들을 좌측으로 들으려고 한 건 사실이었지만 차윤석이도 그 순간 나를 살리려고 했었다. 말은 같이 죽으려 했지만 나는 윤석이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고사진에 운전석이 완전히 깔아뭉개졌고 윤석이 있던 뒷좌석은 멀쩡했던 모습이었다.

동기화가 진행되면서 윤석의 기억 속에 흡수할 가지 돌기와 나의 전기력이 만든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이름에 화학물질이 부딪쳤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의도된 자극이었다. 우린 그렇게 서로가 나뉘어 하나로 살아나고 하나로 죽은 것이다. 그것은 소울 스위칭, 그리고 얻은 것이 컨버전 시너지였다.

윤석의 지적 기억에서 염세적이던 성향이 휘발되고 그 자리에 나의 긍정의 힘으로 대체되므로 그 컨버전 시너지가 구체화 되었다. 지성의 지평선에서 높이를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통찰력이라는 힘, 인류사에 있어 알렉산더 예수 다빈치 뉴톤등 극소수가 누렸던 이능인 것이다. 

**

"처음부터 무리하지 마시고요. "

김지수라는 이 근육질의 빵빵한 트레이너가 엄마의 부탁으로 붙어있었다.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해."

얌전했던 윤석이보다 내가 훨씬 재벌 체질이었다.

"예, 하지만 이사님 어머니께서 걱정하셔서."

허약한 몸은 의외로 유연성은 좋았다. 스트레칭하는데 전혀 무리 없이 따라주자 나의 허약한 몰골에 안쓰러워하던 이 빵빵한 여자 트레이너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